공지사항 NOTICE

[기고문] 미술품 기증기부 에 관한 세제 개편

인물과 소식
작성자
koreagalleries
작성일
2021-02-26 17:00
조회
1072

미술품 기증기부 에 관한 세제 개편

 

박주희 변호사

 

해외 유명 도시를 가면 그 도시를 상징하는 미술관이 있다. 영국의 테이트미술관,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은 미술관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될 정도로 해외의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는 큰 자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에도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유수의 미술관이 있지만 소장품 목록이나 개수를 해외 유명 미술관과 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누군가는 국가 경제력의 차이 아니겠느냐 하겠지만 이 안타까운 현실을 경제력의 차이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 미술관의 경우 자체 예산으로 운영되고 반면 해외의 유명 미술관의 경우 대부분 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부 문화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기부와 후원으로 미술관이 운영될 정도로 해외에서 기부가 활성화 된 것은 바로 세제혜택과 같은 기부 유치를 위한 제도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미술품을 기부하면 개인에게는 소득공제가 한도 없이 적용되고 법인은 손금산입 적용에 한도가 없으며, 프랑스의 미술품 기부에 대해 개인은 66% 세액 공제, 법인은 60% 세액 공제를 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은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물납할 수 있도록 하고, 물납을 하는 경우에는 상속세에서 25% 감면 혜택까지 받는다. 프랑스는 상속세뿐만 아니라 증여세, 부유세도 미술품으로 물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술품 기부를 활성화 하자는 취지에서 미술품 기부와 관련한 세제를 개편하자는 논의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작년에는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물납하도록 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 법률안과 미술관에의 미술품 기부를 법정기부금으로 인정하여 손금불산입, 필요경비 불산입 등에 대한 혜택을 지원하자는 소득세, 법인세법 일부개정 법률안도 발의됐다. 또한 최근 홍라희 여사가 고 이건희 회장의 개인 미술 소장품 1만2000점에 대한 감정 작업에 착수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납하자는 물납제 논의도 다시금 화두에 오르고 있다.

미술품 기부에 대한 세제혜택이나 상속세 물납 제도는 국가의 문화적 자산을 풍부하게 하고 이로써 더욱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 더불어 예술 시장이 활성화 된다는 점 등 우리사회에 많은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논의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수년째 논의로만 그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미술품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도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 돌파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미술품 수집을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미술품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에 대해서도 ‘부자 감세’ 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품 수집이 단순히 돈이 많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 예술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바탕으로 문화적 자산을 축적해 나가는 고차원적 행위이다. 따라서 미술품을 기부하는 일이 단순히 세금 혜택을 받기 위한 요건이 아니라, 그를 통해 국가가 문화적 자산을 확보하고, 국민이 문화유산을 공공재로 누리도록 하는 ‘공익’을 증대시키는 일임을 강조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미술품 기부와 관련한 세제 혜택을 ‘국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고, 영국의 물납제 역시 편의 수단이 아니라 ‘국가적 중요 자산이 공익을 위해, 영국 내에 보존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미술품 기부와 관련한 세제 혜택을 기부자 개인적 차원의 보상이 아니라 문화적 자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공익적 차원‘에 초점을 맞춰 추진하고 홍보해 나가야 국민적 반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 개선과 관련한 두번째 장애물은 바로 미술품의 공정한 가격 책정 문제이다.
미술품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이나 물납제의 취지에 수긍하는 입장에서도 미술품에 대한 객관적인 가격이나 가치를 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밑받침되지 않는다면 결국 조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뿐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미술품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님에도 지금까지 미술품 기부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은 미술품 가치 산정의 어려움이 한 몫 했다고 본다. 물납제나 세제 개선 논의가 시작되면 기획재정부가 제일 먼저 난색을 표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따라서 미술품 기부를 지정기부금이 아니라 법정기부금으로 승격시키거나 공제율을 높인다 해도 미술품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미술품 가치에 비해 부당하게 세금 감면이 되는 등의 부작용만 양산하는 사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렇기에 미술품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시스템 확보가 세제 개선의 전제라 할 수 있다.
물론 세제가 개편되고 나서 감정 평가를 위한 객관적인 지표나 구체적인 운영 방식 마련이 이루어지겠지만 그 전에 미술 시장이 자율적으로 건전하고 공정한 감정 인프라를 확보·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 기재부의 우려를 잠재울 필요가 있다. 또한 감정 인력 양성이나 감정 기준 마련 등은 미술에 관한 조예가 필요한 전문적인 영역으로 오히려 미술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미술 시장의 감정 시스템에 대해서는 불신의 목소리를 보내는 여론도 만만치 않고 감정과 관련한 잡음도 끊이질 않고 있다. 따라서 미술 시장은 단순히 세제 개편을 이끌어내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자체적으로 감정과 관련한 윤리기준 마련, 감정 시스템의 전문성, 투명성 확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결국 미술 시장의 건전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확보, 공익 추구라는 뚜렷한 방향성이 바탕이 되어야 미술품 기부 세제 개편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제도 개선도 손쉽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술계의 보다 영리한 접근으로 부디 이번에는 미술품 기부와 관련한 세제 개편안이 결실을 맺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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