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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_임창섭] 장미는 장미로 다시 돌아왔다

전시리뷰
작성자
koreagalleries
작성일
2021-07-10 17:39
조회
53
김순협, < 장미시대 Ⅱ>, 토포하우스, 2021년 7월 7일~7월 18일
장미는 장미로 다시 돌아왔다.
임창섭(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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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협은 한성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쾰른 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와 미술사공부를 하고 귀국하여, 여러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도 십 수회 개인전과 많은 단체전 그리고 국제적인 전시에 활발하게 참여한 작가이다.

그는 금박과 은박을 유화물감과 같이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이런 재료가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장미> 시리즈는 캔버스 전면에 장미를 그리고 그 위에 작은 흰점을, 정해진 패턴은 아니지만, 무수히 찍어 마무리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다고 흰점이 눈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다. 공기 흐름을 따라 느리게 움직이는 느낌이 드는 정도로 화면과 밀착되어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바탕에 금박이나 은박을 붙이고 그 위에 장미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흰점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김순협의 형식이다.

캔버스 전면에 그린 장미는 고정관념 혹은 상상 속의 장미보다는 아주 평온하게 그려져 있다. 강렬하게 붉은색, 아름다운 형태를 뽐내는 장미가 아니라 부드럽고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여유로운 모습을 한 장미이다. 나의 의견이나 주장을 강렬하게 드러내지 않고 관용과 포용이 충만할 것 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더하는 것은 바로 흰점이다. 작가의 말처럼 은은하게 들려오는 종소리나 음악 소리를 따라 조용히 흐르는 모습은 장미에게 부여된 의도를 더욱 잘 드러내도록 하는 것에 힘을 보탠다.

현대미술의 역사는 보지 않으려는 사람 또 예술에 관심이 전혀 없는 이들의 눈길을 끌어내려 온갖 자극적인 그리고 더 자극적인 형태와 재료와 기술을 동원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뒤샹의 ‘변기’도 그렇고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추상화, 말레비치의 ‘러시아 구성주의’도 그렇다. 자신의 사상과 예술개념을 알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현대미술은 난해해졌고 어려워졌다. 개념미술, 대지미술, 페미니즘, 모노크롬 등등. 어려운 용어와 난해한 이론만이 현대미술을 현대미술이게 만드는 조건인 것처럼 인식하는 환경과 시대를 만들었고 그렇게 되었다. 우리 미술계도 이와 비슷한 추세에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난해한 작품이 미술관 갤러리를 뒤덮어 갈 때 관람객은 점점 줄어들고 일반인들은 무관심해졌다. 이런 주장이 항상 일반화의 오류를 충분히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러나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현재 상황을 면면히 살펴보면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예술이 옳다, 그르다를 판별하는 일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 일반화에 대한 오류는 감안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난해하고 어렵다는 것이 분명 허물일 수는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김순협은 스스로 고백한다. “예술가의 숙명인 양 현실과 단절하고 타협하는 것을 이단인 양 재단하고 각자의 에고 속에 자신을 가두고 살았다. 이 프로그래밍이 된 것이 내 것 인양 각인되어 너무도 끈질기게 내 삶을 따라다녔음을 부인할 수 없다.”라고 말이다. 50대 중반을 넘어서 자신의 관심은 자신의 에고에서 벗어나 이웃과 교감하는 것으로 옮겨 가면서 자신의 작품도 변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장미시대 Ⅱ>는 작가 김순협의 생각과 시간의 변화에 따른 작품 제작변화를 드러낸 시리즈라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많은 이들과 교감하기 위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알아볼 수 있는 장미를 소재로 자신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들려주면서 감상자들이 말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 작품이다.

작가가 말하는 에피소드처럼 예술의 여러 목적 중에 하는 분명히 타인과 소통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행위가 어떤 의미도 포함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 의미가 소통되지 않는다면 존재이유와 창작이유는 급격하게 감소할 것이다. 자신의 수행행위로서 창작행위를 한다는 주장이라면 깊은 산속 절에 작품을 걸고 혼자 감상해야 할 것이다. 극단적이고 일방적인 주장이겠지만 일반 상식인은 충분히 이런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작가는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장미 시리즈를 제작, 발표한 것이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장미 시리즈와 다른 작품도 발표하였다. <명화에 잠기다>와 <탑>이라는 명제를 가진 작품들이 그것인데 작품제작 형식은 장미 시리즈와 같다. 명제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명화를 자신의 방식대로 차용 혹은 패러디한 작품이다. <탑>에서는 사진을 꼴라주 한 형식도 도입하고 있다.

김순협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한 문장으로 정의했다. “장미는 장미로 다시 돌아왔다.” 장미는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장미가 어디로 사라졌거나 혹은 갑자기 등장한 것도 아니다. 있었던 것이지만 다른 것에 빠져 미쳐 눈길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원래 있었던 것을 다시 근본적인 물음으로 되살려낸 것이다. 작가에게 세월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다가오게 만든 것이다.

 

* 본 원고는 2021년 미술평단 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 1986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에서 창간한 미술평단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 평론지로,
(사)한국화랑협회와의 협력을 통해 2021년 봄호, 가을호, 겨울호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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