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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_송만용] 대상화된 시선의 비밀스런 역설

전시리뷰
작성자
koreagalleries
작성일
2021-07-10 17:11
조회
37
대상화된 시선의 비밀스런 역설
이소연, <이소연 개인전>, 조현화랑, 2021년 7월 8일~8월 15일
송만용(미술평론가,동서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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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파도를 넘어온다. 시인은 바람부는 날, 압구정에 간다고 하였지만, 나는 해운대로 간다. 해운대에는 시원한 파도와 구름만이 아닌 젊음도 욕망도 사랑도 아쉬움도 있다. 그래서 오늘 나는 해운대를 목적도 없이 흐른다. 그때!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몸을 돌렸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누구일까? 알 수 없다. 답답하다. 또 걸었다. 잠시 후 파라다이스호텔 앞 한 원도우에서 그 시선과 마주채 서 있는 내가 보인다.

원도우 너머에 있는 여인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여인들이다. 시선은 따갑다. 또한 당당하다가도 차갑다. 알 수 없는 여인들의 시선에 이끌려 문을 열고 들어간다. 공간의 낯설음과 나의 궁핍함은 조그마한 정보라도 찾고자 분주하다. 이소연이다.

이번 전시는 조현화랑의 기획전시회이며 “초현실적 무대를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회화로 표현하는” 소위 ‘파자마’시리즈라고 한다. 이를 통해 “현대인들이 사회적 관계 때문에 숨길 수밖에 없는 내밀한 상상력과 판타지를 꺼내어 확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전시회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텍스트는 의문의 꼬리를 문다. 그래도 부산에서는 메이져급이라고 할 수 있는 조현화랑인데 기존의 성격과 다른 이소현의 작품전을 기획 개최한 것일까? 이전까지 조현화랑이라고 하면 검증된 중진이상의 작가 작품이 중심이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알아보니 조현화랑은 2011년도부터 젊은 작가에 대한 지원으로 이소현 등 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지원을 확대하는 중이라고 한다. 2007년 마드리드의 아르코 아트페어에서 아시아 작가로 발굴한 작가가 이소연이다. 아마도 이소연의 여성의 감각적 색채가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조현화랑과 맥을 같이 한 것으로 보인다.

스쳐 지나간 시선에 이끌려 온 이소연의 작품을 보면서 느낀 것은 감각적 색채에 의한 자화상이라는 점과 그 속에 비밀스런 역설의 반전이 있어 보인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자화상의 코드를 보자. 기호적인 관점에서 보면 “치켜 올라간 눈에 붉게 물든 볼, 굳게 다문 입술까지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 ... 화면의 중앙을 차지한다. 작가는 표현에서 읽히는 심리보다 다른 것에 집중하도록 의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소연이 사용하는 자화상적 요소에서 심리보다 집중하도록 하는 그 무엇은 무엇인가?

그렇게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렘브란트류의 자화상과는 다르다. 즉 시간의 흐름 속에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자화상이 아니라 욕망과 좌절의 파노라마가 이번 이소연의 자화상이다. 아마 이점이 이소연을 이소연답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소연의 자화상적 이목구비는 많은 심리학적 알레고리를 품고 있다. 특히 작은 눈은 심리학적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회피하고자는 자기애(愛)적 표현이다. 더군다나 작은 눈, 찢어진 눈은 비록 작가 이소연을 닮았다곤 하지만 개별형상은 서양 우월적 시간에 의한 인종차별적 요소의 기표들이다.

그런데 이소연은 이것들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한다. 즉 인종차별적 요소가 곧 나의 정체성이라는 역설... 자화상이지만 대상화된 자화상이라는 역설. 근거없는 우월의식에서 나온 인종차별적 요소가 내가 아니지만 나의 기표이며 정체성이라는 역설이 그것이다. 결국 여기에는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반전이 있어야만 한다.



반전을 임을 암시하는 암호가 바로 화면에 있다. 아래에서 위로 진행하는 빛이다. 괴기스러운 시선. 그렇다. 이소연의 냉소가 역설이다. 이소연은 왜곡된 시선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의 편향된 시선을 오히려 즐겨라는 냉소적 역설이다. 이러한 전략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시학 2편인 『코메디아』 즉 “저급한 자의 행동을 모방 혹은 즐기게 하라...”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소연의 자화상은 정면을 보고 있다. 그림 속 이소연이 세상, 즉 사랑과 욕망 그리고 아쉬움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작은 눈은 보는 이의 감추어진 자기의식을 보게끔 만드는 창이다.

다음으로 이소연은 감각적 색채로 시간을 구속한다. 정지시킨다. 현재로 소환한다. 이소연의 색채에 갖힌 시간은 영원한 젊음의 감성이다. 그렇지만 이소연의 색채는 일종의 디지털적 색채이다. 인쇄물보다는 영상물에 맞는 RGB의 색감이다. 색상과 채도도 높다. 모니터나 적어도 빛 아래에서는 빛나는 색감이다. 그래서 디오니소스적인 색감이다. 그렇게 보면 이소연의 작품은 자기만의 혹은 내면적이며 은밀한 공간을 요구한다. 그리고 빛난다. 이것인 이소연의 시선이다.

이러한 전략을 배가하는 유혹의 기제가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속옷>이다. 속옷은 감추고 싶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만 성장하는 여성에게는 성숙함의 표상인 것이다. 그런데 전시장의 이소연은 마치 대학 첫 미팅 전날의 설레임과 같이 다양한 머리모양과 옷들 그리고 선글라스를 쓴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육체의 미성숙함에 비하여 머리는 다양한 색과 형태와 함께 풍성함으로 대별된다. 즉 심리학적 으로 보면 큰 머리는 지적 욕구가 강하든지 정신 작용의 중요성을 무의식적으로 강한 사람 또는 적극적이고 공상적인 욕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소연들은 색과 형태의 다양성으로 내 앞에 서 있으면서 말이 없다.

다만 머리 모양과 이질적으로속옷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은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 안전한 곳에서 다양한 변화는 결정하지 못한 자아의 방황이며 역설적으로 즐거운 놀이인 것이다. 그런데 화랑에서 받은 텍스트에는 <속옷>은 “비밀스러운 ... 개인적 취향 그리고 은밀한 성적 판타지를 소환” 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작가 이소연은 71년생이다. 우리나이로 50대이다. 만약 젊은 작가가 이렇게 표현하였다면 이와같은 시각은 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50년의 여성의 작품에서 ‘은밀한 성적 판타지’보다는 흘러가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못다한 것에 대한 갈망과 억압되었던 욕망의 전치로 보는 것은 어떨까? 작품에서 나오는 옷들 뿐만 아니라 신체들도 아직 어린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 성장과 성적 판타지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수용하고 싶어 갖고 있었지만 다가갈 수 없었던 시절에 대한 갈망과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숨겨버렸던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면 어떨까? 그런데 나의 시각에는 비밀스러움과 은밀한... 감추어진... 그 과정에서 말하지는 않고 있지만 다른 자기애적 즐거움이 보인다.

* 본 원고는 2021년 미술평단 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 1986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에서 창간한 미술평단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 평론지로,
(사)한국화랑협회와의 협력을 통해 2021년 봄호, 가을호, 겨울호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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